공무원 정년퇴임 후 농촌으로 간 이석민씨
“인생은 수많은 도전의 연속입니다. 하고 싶은 일이면 실패하더라도 신념을 가지고 시도해보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요.” 고위 공무원으로 정년퇴임 후 번듯한 자리를 마다하고 시골에서 한우사육으로 억대 수입을 올리며 제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일군 사람이 있어 화제다. 보다 윤택한 삶을 누리려고 서울로 향하는 사람들과 달리 ‘서울 시민’이라는 이름표를 과감히 떼버리고 촌로의 삶에 베팅한 이석민(67·강원도 철원군 사곡리)씨가 그 주인공. 이씨는 “연금을 받으며 여생을 즐기는 것보다 누런 소들과 부대끼며 지내는 시골생활이 평소 꿈이었기에 서울 생활을 과감히 접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건설부 고위직을 지내던 그는 12년 전 정년을 앞두고 받은 휴가 기간 동안 한우 10마리와 땅 700평을 산 후 목장을 꾸리고 전문 서점가를 돌며 선진국의 축산 관련 서적들을 두루 섭렵했다. 건축공학을 전공한 그는 축산 분야가 워낙 생소해 축산학과 교수로 있는 친구에게 틈나는 대로 자문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는 뒤늦게 무슨 소를 키우겠다고 난리냐며 핀잔을 들었다.
강원도 강릉이 고향인 그는 퇴직 후 마음먹은 것을 마침내 실천에 옮기려 친척이 있는 철원으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시골로 가려는 그의 꿈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무엇보다 1남3녀의 자식 교육이 걸림돌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집사람 반대가 아주 심했어요. 아이들이 대학교를 모두 마치지 않아 시골로 갈 수 없다는 것이었죠.”
하는 수 없이 이씨는 홀로 철원으로 옮겨 5년간 밥을 지어먹고 소와 함께 생활하는 ‘기러기 아빠’가 돼야 했다. 일을 마친 저녁 소 울음뿐인 집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숱한 나날을 잠 못 들곤 했다. 의욕만 앞섰던 그는 쓰라린 실패로 좌절을 겪기도 했다.
“언제 소를 키워봤어야죠. 처음 3∼4년간은 자식 같은 소의 절반을 잃어버렸어요. 아무리 전문 서적을 탐독해 지식을 갖추어도 현장 경험이 없다보니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는 배웠답시고 잘난 척 시골에 내려와 감당도 못할 일을 벌여 소만 죽인다고 손가락질할까봐 남들이 잠든 틈을 타 몰래 애지중지하던 소를 파묻으며 많이 울었다고 한다. 본궤도에 오르기까지 5년여를 소와 씨름한 그는 이제 수의사의 경지에 올라 인공수정부터 분만까지 모든 관리를 혼자 척척 해낸다.
“우리 축사에는 수정사나 수의사가 온 적이 없어요. 제가 다 알아서 하니까요. 처음에 소 키운다고 그렇게 반대하던 집사람도 이제 발정기를 알아내는 데는 박사가 다됐죠.”
특히 자가 수정부터 분만까지의 노하우가 남달라 몇 년 전부터는 축산업계 종사자뿐 아니라 한우를 키우는 사람들도 견학올 만큼 인정받는 전문가가 됐다.
5000여만원을 들여 시작한 한우사업이 지금은 150여마리로 늘어 재산가치만 대략 15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그가 벌어들인 수입은 1억7000만원 정도. 그 중 사료비, 약품비, 생활비 등 7000만원을 제외해도 순수입만 1억원대이다. 이는 전국 한우사육 농가와 비교해보아도 1% 내에 드는 부농으로 이러한 성과를 그는 6∼7년째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요즘 그는 아들에게 ‘축사의 열쇠’를 물려줄 준비를 하고 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을 다닌 하나뿐인 아들이 한우사육을 가업으로 잇겠다며 현장수업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남부럽지 않은 직장을 다닌 아들이지만 소를 키우겠다고 할 때 그는 반대하지 않았다.
“이제 생각해보면 어떤 일이든 남에게 드러내 보이기 위한 것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살아가는 데 진정 중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씨는 한우가 경쟁력이 없다는 말은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잘라 말한다.
“질병관리에 있어서 어느 나라보다도 엄격한 한우는 수입 소고기와는 비교할 수 없이 그 품질이 우수하고 안전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우사육은 농촌 가계 수입원의 일부가 아니라 매우 유망한 사업입니다.”
그러나 그는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막연한 동경이 아닌 스스로 다짐해야 할 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우선 뚜렷한 목표와 경영자로서의 마인드를 갖고 열정적으로 임해야 하지요. 그리고 기왕 시작하면 소를 키우든 돼지를 키우든 그 분야의 최고가 되겠다는 의지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또 그는 처음부터 사업에 무리수를 둬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주위에서 자신의 자금능력을 감안하지 않고 무모하게 큰돈을 들였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소규모일지라도 철저히 준비해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어요. 무작정 뛰어들면 십중팔구 실패하기 십상이지요.”
그는 농촌은 도시와 다른 나름대로의 장점이 많다며 은퇴 후 인생 2막을 시골에서 보낼 것을 적극 권한다.
“남들은 시골 생활을 하면 종일 일에 매달려 죽도록 고생만 하는 줄 아는데 건강 유지엔 시골만한 곳이 없다고 봅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무공해 채소와 좋은 쌀만 먹다 보니 아픈 데가 없어요. 남들이 우리 부부를 보면 더 젊어졌다고 말합니다.”
축사에서 소와 부대끼며 바쁜 하루를 보내는 그는 칠순이 멀지 않았지만 전국 최고의 고품질 한우를 생산하기 위해 오늘도 황혼이 아닌 ‘제2의 인생’을 불태우고 있다.
황온중 기자
ojhwang@segye.com
ⓒ 세계일보&세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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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부 고위직을 지내던 그는 12년 전 정년을 앞두고 받은 휴가 기간 동안 한우 10마리와 땅 700평을 산 후 목장을 꾸리고 전문 서점가를 돌며 선진국의 축산 관련 서적들을 두루 섭렵했다. 건축공학을 전공한 그는 축산 분야가 워낙 생소해 축산학과 교수로 있는 친구에게 틈나는 대로 자문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는 뒤늦게 무슨 소를 키우겠다고 난리냐며 핀잔을 들었다.
강원도 강릉이 고향인 그는 퇴직 후 마음먹은 것을 마침내 실천에 옮기려 친척이 있는 철원으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시골로 가려는 그의 꿈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무엇보다 1남3녀의 자식 교육이 걸림돌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집사람 반대가 아주 심했어요. 아이들이 대학교를 모두 마치지 않아 시골로 갈 수 없다는 것이었죠.”
하는 수 없이 이씨는 홀로 철원으로 옮겨 5년간 밥을 지어먹고 소와 함께 생활하는 ‘기러기 아빠’가 돼야 했다. 일을 마친 저녁 소 울음뿐인 집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숱한 나날을 잠 못 들곤 했다. 의욕만 앞섰던 그는 쓰라린 실패로 좌절을 겪기도 했다.
“언제 소를 키워봤어야죠. 처음 3∼4년간은 자식 같은 소의 절반을 잃어버렸어요. 아무리 전문 서적을 탐독해 지식을 갖추어도 현장 경험이 없다보니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는 배웠답시고 잘난 척 시골에 내려와 감당도 못할 일을 벌여 소만 죽인다고 손가락질할까봐 남들이 잠든 틈을 타 몰래 애지중지하던 소를 파묻으며 많이 울었다고 한다. 본궤도에 오르기까지 5년여를 소와 씨름한 그는 이제 수의사의 경지에 올라 인공수정부터 분만까지 모든 관리를 혼자 척척 해낸다.
“우리 축사에는 수정사나 수의사가 온 적이 없어요. 제가 다 알아서 하니까요. 처음에 소 키운다고 그렇게 반대하던 집사람도 이제 발정기를 알아내는 데는 박사가 다됐죠.”
특히 자가 수정부터 분만까지의 노하우가 남달라 몇 년 전부터는 축산업계 종사자뿐 아니라 한우를 키우는 사람들도 견학올 만큼 인정받는 전문가가 됐다.
5000여만원을 들여 시작한 한우사업이 지금은 150여마리로 늘어 재산가치만 대략 15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그가 벌어들인 수입은 1억7000만원 정도. 그 중 사료비, 약품비, 생활비 등 7000만원을 제외해도 순수입만 1억원대이다. 이는 전국 한우사육 농가와 비교해보아도 1% 내에 드는 부농으로 이러한 성과를 그는 6∼7년째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요즘 그는 아들에게 ‘축사의 열쇠’를 물려줄 준비를 하고 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을 다닌 하나뿐인 아들이 한우사육을 가업으로 잇겠다며 현장수업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남부럽지 않은 직장을 다닌 아들이지만 소를 키우겠다고 할 때 그는 반대하지 않았다.
“이제 생각해보면 어떤 일이든 남에게 드러내 보이기 위한 것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살아가는 데 진정 중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씨는 한우가 경쟁력이 없다는 말은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잘라 말한다.
“질병관리에 있어서 어느 나라보다도 엄격한 한우는 수입 소고기와는 비교할 수 없이 그 품질이 우수하고 안전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우사육은 농촌 가계 수입원의 일부가 아니라 매우 유망한 사업입니다.”
그러나 그는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막연한 동경이 아닌 스스로 다짐해야 할 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우선 뚜렷한 목표와 경영자로서의 마인드를 갖고 열정적으로 임해야 하지요. 그리고 기왕 시작하면 소를 키우든 돼지를 키우든 그 분야의 최고가 되겠다는 의지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또 그는 처음부터 사업에 무리수를 둬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주위에서 자신의 자금능력을 감안하지 않고 무모하게 큰돈을 들였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소규모일지라도 철저히 준비해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어요. 무작정 뛰어들면 십중팔구 실패하기 십상이지요.”
그는 농촌은 도시와 다른 나름대로의 장점이 많다며 은퇴 후 인생 2막을 시골에서 보낼 것을 적극 권한다.
“남들은 시골 생활을 하면 종일 일에 매달려 죽도록 고생만 하는 줄 아는데 건강 유지엔 시골만한 곳이 없다고 봅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무공해 채소와 좋은 쌀만 먹다 보니 아픈 데가 없어요. 남들이 우리 부부를 보면 더 젊어졌다고 말합니다.”
축사에서 소와 부대끼며 바쁜 하루를 보내는 그는 칠순이 멀지 않았지만 전국 최고의 고품질 한우를 생산하기 위해 오늘도 황혼이 아닌 ‘제2의 인생’을 불태우고 있다.
황온중 기자
ojhw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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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공식]♡귀농사모♡
글쓴이 : 이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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