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스크랩] 잡초송(雜草訟) (김영원/계간귀농통문)

동곡 2007. 12. 25. 17:47

 
  잡초송(雜草訟) 김영원
전국 유기농 실천 협의회 회장
전국귀농운동본부 고문
 

나는 잡초 농장을 경영하는 농부다. 자고로 懶農者作草(나농자작초), 篤農者作穀(독농자작곡), 上農者作土(상농자작토), 聖農者作人(성농자작인)이라 했다. 농사를 짓는 농부로서 잡초에 대한 감회가 없을 수 없다. 1년 4계절 중 겨울철을 빼고는 농사일 중에 잡초와의 싸움이 그칠 날이 없기 때문이다. 잡초와 싸우면서 그 강인한 생명력 앞에 번번이 농부는 패자가 된다. 그 와중에도 가만히 잡초의 생태를 관찰해보면 놀라운 신비를 발견하게 된다.

 

잡초는 봄소식을 알리는 전령이다. 눈 덮인 양지바른 논둑, 밭둑의 눈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봄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알리고 있다. 어느새 태양의 열기가 강해지고 녹을 줄 모르던 눈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남쪽에서 훈훈한 바람이 불어오고, 들판에는 아지랑이가 아롱아롱 피어오를 때면 처녀들은 대바구니를 끼거나 다래끼를 매고 달래, 냉이, 쑥, 돈나물, 씀바귀를 캐러 들판으로 나간다. 그 모습이란 마치 활동사진 같다. 제각기 독특한 봄나물의 향기는 군침을 삼키게 하고 봄철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여 겨우내 결핍된 농부의 영양과 입맛을 돋구어 준다. 참으로 고마운 봄나물들!

 

이 나물은 사람만 독식하지 않는다. 암소는 혓바닥이 패이도록 씹어대고, 아이들과 노인들이 꼴망태를 매고 나가 볼록볼록 담아온 꼴은 외양간의 큰 일꾼(소)의 입맛과 힘을 돋구어준다. 이와 같이 한 해의 농사일은 봄나물 캐고 꼴을 뜯는 일로 시작된다. 그 때 한 식구 대접을 받던 소들은 참으로 행복했다. 오솔길을 거닐며 질 매로 거름을 실어 나르고 비탈 밭은 쟁기로 갈면서 주인 농부의 구령(이랴, 어디, 워어, 이라라 가자! 등등)에 따라 마치 농부의 수족처럼 움직인다. 이렇게 소와 주인은 일터에서, 외양간에서, 가마솥에서 쇠죽을 끓이면서도 교감을 한다. 소는 주인의 말만 알아듣는 것이 아니고 생각까지 감지한다. 이상하게도 소는 주인의 성격을 닮으면서 늙어간다. 이렇게 주인이 먹여주는 것만으로 족하게 여기며 불평할 줄도 모르는 소는 힘이 없어 일을 못하게 되면, 우시장에 나가 낯설은 사람에게 팔려간다. 팔려가면서 눈물을 흘리는 소도 보았다. 소를 팔아버리고 외양간이 텅 비면 온 집안이 허전하다. 젖먹이 새끼 송아지를 시장에 가서 떼어 팔고 돌아와서는 몇 날을 울며 지새는 어미 소의 울음소리! 이를 듣는 식구들의 마음 또한 애처롭기 그지없다. 이것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의 짓인가!

 

우리 집 내자가 이 산골짜기 마을에 시집온 지 40여 년, 스물 두 살 때 왔다. 그 때 이웃집에서 젖먹이 송아지를 떼어 팔고 어미 소가 밤새도록 목이 쉬도록 '엄매∼'하면서 제 새끼 찾는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밤새 뜬눈으로 지새며 같이 울었다는 이야기는 환갑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남아 있다. 소는 풀을 먹고사는 동물이기에 온순한 성품을 가지고 있고 묵묵히 일하다가 수명이 다하면 고기와 가죽과 뼈까지 사람에게 몽땅 주고 간다. 인도에서 소를 성우(聖牛)라고 불렀지만 산업사회에서는 소는 육우(肉牛)이다. 용도와 구실이 변했기 때문이다.

 

다시 잡초 이야기를 해보자. 조물주는 왜 농부가 이렇게 고역을 치러야 하는 잡초를 만들었을까? 이것을 바로 터득해야 진정한 농부가 된다. 만일 땅 위에 잡초가 없다고 가정해보자! 그곳은 사막이 된다. 아무 것도 살수가 없다. 잡초가 있어야 생명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잡초가 자랄 수 있는 땅이라야 곡식도 자랄 수 있다. 풀(잡초)의 색깔은 녹색이다. 세상에 무수한 색깔이 있다. 그 중 가장 아름다운 색깔이 녹색이다. 녹색은 생명의 색깔이기도 하다. 구약 성서에 예언자 이사야가 묘사한 평화의 메시아가 통치하는 그 나라에서는 사자도 풀을 뜯는다. 봄 동산의 풀은 뜯어도 또 돋아난다. 강인한 그 생명의 힘이 놀라울 따름이다. 공룡이 사라지게 된 것은 거대한 체구를 가진 초식동물인 공룡이 푸른 잎을 다 먹어버리고 초목이 황량하게 고사해버린 환경에서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잡초의 제1기원은 빙하시대이고, 제2기원은 농경이 시작되던 때라고 한다. 지구의 아름다운 녹색 껍질(지구의 피부)이 기경으로 버려진 토지를 다시 녹색 피부로 복원하기 위해, 마치 우리 몸의 피부가 상처를 입게 되면 그 상처 부위에 딱지가 앉는 것처럼 지구는 식물이 있는 일부에 돌연 변이를 일으켜 본래 그 토지에서는 살 수 없는 식물들에게 그 불량 교란지에서도 살 수 있는 힘을 주어 거기서 살게 하여, 그 토지에 그 잔사들이 환원하여 유기물을 남기게 한다. 이 유기물이 축적되어 토양을 형성시켜 녹색의 피부로 복원시킨다. 결국 잡초는 지구가 만든 불건전한 땅(불모지)과 인간이 해친 불완전한 흙을 완전히 살아있는 흙으로 만들어 식물체가 살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토양의 비옥도에 따라 생겨나는 잡초의 종류가 다른 것이 신비롭다. 미국이 월남전에서 사용한 고엽제 작전지역에서는 푸르름이라고는 볼 수 없는 황량한 땅에 전에 없던 풀이 생겨나서 서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풀이름을 '아메리칸 호프'라고 붙여주었다고 한다. 이는 미국의 범죄적(자연 고사)전쟁을 저주하는 오명으로 이해된다.

 

박토나 화학비료가 많이 뿌려진 땅에 모질게도 가득 자라는 잡초를 보노라면 이 이치를 깨닫게 된다. 그 잡초들이 땅으로 돌아가는 반복과정에서 토양은 유기물 함량이 늘어나고 비옥한 땅이 된다. 관행 농법으로 농사짓는 일모작 논에는 땅이 보이지 않게 독새풀로 뒤덮인다.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다. 이 독새풀이 토양 속에 잔류하는 질산염을 소모시켜 주는 고마운 풀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이와 같은 자연의 질서는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밭에 거름을 많이 주면 잡초가 많아지고 논은 정반대이다.

 

월남에서 자행되었던 고엽작전 이후 세계 도처의 농장으로 옮겨져서 농사가 잡초를 고사시키는 전쟁으로 변했다. 이 전쟁의 사령탑은 행정당국과 농약기업이며 농약판매상은 그 하수인이다. 학계도 한 몫을 담당한다. 유전자 조작으로 육종한 벼나 콩 등의 작물이 제초제를 뿌려도 끄떡없다는 선전이 언론을 통해서 전파된다. 참으로 무지막지한 지식인들! 여기에 발맞추어 근대 농법의 소위 선진형 농가라고 자처하는 농장(과수원)에는 연중 4∼5회에 걸쳐 제초제가 살포된다. 이젠 모든 작물에 제초제 없이는 농사가 불가능하다고 인식하게 된 농민들의 의식 변화는 노동력 부족과 함께 제초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농사로 전환케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제초제의 무서운 독성을 알게 된 소수의 농민들은 호미로 매거나 낫으로 베거나 초생재배를 한다. 이 과정에서 잡초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고 작물과 공생관계에 있는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게 된다. 그래서 오히려 잡초를 소중한 자원으로 활용하게 된다. 농사에서 이상적인 잡초관리는 잡초가 농작물을 능가하지 않게 조절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2모작 윤작체계는 잡초를 절대로 적으로 삼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잡초(산야초)가 갖고 있는 천연효모와 영양, 또는 약용성분은 발효방법으로 그 엑기스를 추출하여 건강음료로 만들고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재료가치가 있는 잡초를 더욱 육성한다. 글머리에서 우리 농장이 잡초농장이라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잡초→곤충→지렁이→원생동물→미생물→두더지, 들쥐 등 먹이사슬로 엉킨 살아있는 생태계에서 생명의 양식이 나온다.

 

현대인들이 크게 착각하고 있는 개발의 개념을 바로 잡아야 한다. 산허리를 깎아 길을 내고, 공단을 만들고, 골프장과 스키장을 곳곳에 개발하고, 택지개발로 옥토가 사라지고 빌딩의 숲이 들어선 것을 발전이라고 착각하고 경제 성장과 같은 맥락에서 이것들을 이해한다. 이러한 개발은 자연환경의 파괴 없이는 불가능하다. 개발지역이란 그만큼 자연을 파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또한 자연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각성이 없는 개발은 인간 자신에 대한 자해행위이다.

 

몇 해 전에 안동의 권정생님이 우리 집에 어려운 걸음을 하셨다. 일제 때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가서 해방 후 돌아오지 못하고 이국에서 고향 그리다가 한 많은 생을 마친 한 외로운 동포의 유해를 고국 땅에 묻어주는 일 때문에 온 것이다. 그때 우리 집 뒷동산에 올라가 늑두산 봉우리에서 뻗어 내린 나직한 산봉우리들이 마치 아기를 안고 있는 아름다운 어머니의 모습과 같음을 감탄하면서 "장로님의 저 과수원 밭은 어디 다른 곳에 하고 저 자리에는 본래대로 소나무를 자라게 하이소. 저 밭만 없으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리껴?" 하셨다. 내가 30여 년 전에 산을 개간하여(계단식) 사과나무를 심던 것이 이제는 사과보다도 잡초농원으로서 우리 가계에 큰 몫을 하고 있기에 나는 권 선생께 "지금은 겨울철이라서 좀 흉터같이 보이지만 봄풀이 돋으면 일년 내내 초록은 동색으로 별 표가 안 나니더"하고 애써 변명을 했다. 살아가는 삶의 현실 때문에 그 산을 그렇게 이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권 선생의 권고의 깊은 뜻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잡초는 생명의 원료이다. 이 고마운 잡초를 적으로 삼아 마구 고사시키는 인간의 어리석음은 경제라는 마술에 홀려서 이성과 영성의 눈을 어둡게 만든다. 제초제로 잡초를 고사시키는 황폐해진 인간의 본성을(農心) 회복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이제 우리 모두는 서둘러 잡초와 공생하는 이치와 방법을 생각해야 할 때다.

 

 

해가 뜨기 전에 잡초(풀의정)를 채취해야지

달려간 잡초 농장

영롱한 물방울에 간직되고 있는 태고의 신비

이 놀라운 생명의 신비

고마운 잡초

너는 생명의 근원

너는 지구의 피부

이 피부를 벗기는 중장비의 굉음

파괴가 개발이란다

오늘도 들판에는 제초제를 뿌리는 고엽작전

농부들의 억지와 편의주의가 저지르는 범죄다

타 들어가는 잡초에

황량한 들판이여

아니 황폐해진 농심이여

신음하는 푸르름이여

시들어 가는 인간이여

잡초가 살 수 없는 땅, 인간도 살 수 없으리

죽음의 저승사자 다이옥신이여!

 

출처 : 귀농통문 09호 / 1999년 봄

출처 : 오두막 마을
글쓴이 : 나무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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