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포구에 간다. 찬바람이 옷섶으로 스며드는 추위에도 섬을 맞댄 포구는 아늑하다. 김포의 포구는 대명포구 단 한 곳 뿐.
겨울 포구는 북적대거나 거친 움직임이 없다. 뱃사람이나 낚시꾼들의 섬세한 미동만 잔잔하게 흐른다.
시인 곽재구는 그의 책 ‘포구 기행’에서 이렇게 물었다. ‘밤을 새운 긴 기차 여행 끝에 당신이 한 낯선 바닷가에 닿는다면
그곳의 이름이 무엇이었으면 좋겠는가. 목포? 부산? 포항? 강릉?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밤을 새우고 새 햇빛을 만나고 처음 본 바닷가
마을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그곳의 이름이 목포면 어떻고 청진이면 어떠한가.’
가까운 곳에서 ‘그리운 포구’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삶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명포구는 위치했다.
대명포구도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예전에는 대명나루로 불렸고 인근 강화를 잇는 초지대교가 건설되기 전까지만 해도 김포와
강화를 잇는 나루터 역할을 했다. 최근에는 포구에 널려 있던 난전들이 대부분 자취를 감추고 수산물 회 센터가 반듯하게 자리를 잡았다.
쉼터 역할을 할 함상공원 역시 2010년 개장을 앞두고 있다.
다리가 놓이고 김포에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주말 나들이 길에 대명포구를 찾는 사람들은 부쩍 늘었다.
어쩌면 사색을 위해 추억의 겨울 포구를 거니는 것은 얼마 남지 않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1만 원 짜리 횟감이 즐비
모습이 바뀌었어도 포구의 분위기는 고스란히 배어 있다. 여름이면 강화도 선수포구 못지않게 밴댕이가 쏟아져 나오고,
가을이면 ‘대하 익는 냄새가 10리 밖에서부터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했던 포구는 겨울이면 꽃게, 새우의 세상이다.
김장철을 전후해 ‘추젓’이라 불리는 새우젓이 지천으로 널렸다. 어민들은 직접 잡아온 새우를 드럼통에 넣고 젓갈로 말리기도 한다.
회 센터 주변에는 간재미, 서대 등을 말리는 그물이 가득하다.
수십여 가게들이 정돈된 어판장에 들어서면 아줌마들의 손놀림부터가 일단 예사롭지 않다.
광어와 농어를 횟감으로 탈바꿈시키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1분 정도. 머리와 가시를 한 칼에 쏙 도려내면 몸체만 덩그러니 남는다.
“어이 총각! 코에 복이 가득하니께 이 간재미 떨이로 만원에 줄게 사가유.”
이 생선, 저 횟감을 담은 접시에 붙은 가격이 대부분 만원이다. 회 센터 뒤편으로 대형 횟집들도 자리 잡았지만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어판장의 값싼 횟감들에는 놀랍게도 자연산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그 회를 부둣가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맛본다. 포구 인근으로는 나무로 운치 있게 정돈된 의자들이 마련돼 있다.
일부 사람들은 분위기를 내려고 굳이 고깃배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 회 한 점에 소주잔을 기울인다.
포구 한쪽에는 망둥이를 건져 올리는 겨울 낚시꾼들의 세상이다. 즉석에서 구입한 회는 초고추장을 살짝 묻혀 입안에 넣으면 담백한
기운이 입안에서 돌며 쫀득쫀득한 살점이 입으로 홀랑 넘어간다. 갯바람 맞으며 포구에서 맛보는 회만이 던져주는 미각이다.
봄에 회로 먹던 밴댕이를 겨울에는 무침으로 먹는 맛도 별미다. 대명포구의 한편에는 함선 ‘운봉함’이 위용을 드러낸다.
운봉함은 1943년 미국에서 건조돼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에 참전하는 등 50여 년 간 현장을 누빈 퇴역함정이다.
이 군함은 함상공원 개장과 함께 공개된다. 운봉함 앞의 광장 놀이터는 거북이, 불가사리 등 바다생물들이 조각돼 있어 엄마 손 잡고
따라나선 꼬마들의 넓은 쉼터가 됐다.
조각공원 산책과 문수산성
포구에서 배를 채웠으면 한가로운 겨울 산책에 나서 볼 일이다. 48번 국도를 경유해 강화대교 방향으로 향하면 문수산 기슭에
김포 국제조각공원이 위치했다. 자연과 예술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여주는 테마공원으로 세계 11개국 작가들의 조각 작품
30여점이 숲속에 전시돼 있다. 프랑스의 장 피에르 레이노, 미국의 솔 레이트 등 세계적인 도시환경 조각가들의 작품들은 ‘통일’을
주제로 산책로 안에 옹기종기 숨어 있다. 이곳에서는 멋진 조각품을 찾아 거니는 재미가 색다르다. 소나무 숲 동산, 그루터기 계곡,
바람의 능선 등 2.5㎞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작품들 너머로는 멀리 북한 땅이 보여 여운을 더한다.
조각공원 산책로에서는 문수산도 나란히 모습을 드러낸다. 문수산은 경치가 아름다워 ‘김포의 금강’으로 불리는 곳이다.
문수산 산행은 4.6㎞의 등산로와 1.4㎞의 삼림욕로로 이뤄져 있다. 정상 부근의 문수산성에서는 멀리 한강과 서해바다도 내려다보인다.
문수산성은 조선 숙종 때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을 막기 위해 쌓은 성으로 강화의 갑곶진과 마주하고 있다.
축성 당시에는 세 개의 문루가 있었으나 현재 취예루 한곳만 복원된 상태다.
김포 나들이 길에는 독특한 체험 공간도 마련돼 있어 눈길을 끈다. 대곶면의 유리박물관은 다양한 유리 공예품을 구경하고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이색 박물관이다. 전시관에는 앙증맞은 작품들이 전시돼 있으며 단체가 아닌 가족 방문일 경우에도 체험이 가능하다.
1400도 이상 되는 가마 안의 유리 용액을 쇠대롱에 묻힌 뒤 입김으로 부는 재미 역시 신기하다. 자신이 만든 소중한 작품은 직접
가져갈 수도 있다.
여행팁
가는 길=김포 방향 48번 국도에서 빠져나와 양촌, 대곶을 지나면 대명포구에 닿는다. 김포공항 입구 송정에서 60-3번 버스가
대명포구까지 향한다. 조각공원은 48번 국도를 따라 강화대교로 향하다 월곶면 군하리에서 우회전한다. 송정에서 88번 버스가 다닌다.
주말 김포 길은 교통체증이 심하니 붐비는 시간대는 피하는 게 좋다. 이 일대는 낮에도 음주단속이 엄격해 주의가 필요하다.
기타정보=대명포구에는 물때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마련돼 있다. 배가 들어올 때 시간을 맞추면 즉석에서 횟감 구입이 가능하다.
초지대교를 따라 강화로 건너면 장화리, 동막 해수욕장 등의 천연 갯벌을 체험할 수도 있다. 대명포구 인근 덕포진과 라듐온천인
약암온천도 함께 둘러보면 좋다. 조각공원 입장료는 무료. 유리박물관은 성인 2000원, 어린이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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