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불량식품, 밀
겨울입니다. 무척 춥네요. 벌써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가을걷이는 잘들 하셨는지요? 농사꾼들 매년 어렵다고는 하지만 올해처럼 어려운 해는 없었던 듯합니다. 어제 오늘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고 마치 80년대로 돌아간 것처럼 경찰차가 불타고 시위군중은 피투성이가 되는 참혹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문명의 전환과 생태적 가치의 회복을 주장하는 분들은 어쩌면 강 건너 불 보듯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농촌에 터 잡고 어울려 사는 입장에서는 마음 아프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귀농 식구 중에도 분명 저 현장에 계실 분이 꽤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떠오르면서 혹시 어디 다치기라도 한 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그건 그렇고요, 이번호 잡곡은 밀입니다. 밀만 생각하면 슬픔과 분노가 물밀듯이 밀려옵니다. 왜 그런지 다들 아시죠? 다음 글을 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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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자기들이 먹는 것은 무척 까다롭게 따지면서 자국의 수출품에 대해서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는 수확할 때만 농약을 뿌리는데 미국은 수확 후에도 농약처리를 하는 것이 법으로 인정되어 있기 때문에 수출할 때 안전성 검사도 않고 일단 선적한 후에는 "내가 알게 뭐냐"는 배짱입니다.
미국에서 우리나라까지는 선박으로 40일 정도 걸리는데 어쩔 수 없이 적도 부근을 지나오게 됩니다. 적도를 지날 때 선실온도가 60℃ 정도로 고온다습하기 때문에, 벌레 먹고 썩고 싹이 나고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독한 청산이나 메틸 브로마이드로 훈증을 합니다. 실제로 89년 인천항에 들어온 농약에 절여진 미국산 밀을 하역하던 인부가 한 사람은 즉사하고 네 사람은 졸도해버린 사고가 있었습니다.
부작용이 있을 때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도 수입창구가 일원화되어야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는 보건복지부와 농림부로 창구가 이원화되어 있습니다. 전문인력도 부족하고 첨단장비도 부족하고 기술수준도 미흡하며 검사항목도 선진국에 비해 적고 허용기준도 엉성합니다. 그리하여 통관 불합격률이 미국은 37%, 영국 25%, 일본은 19%인데 우리나라는 겨우 0.5%이니, 검역이 얼마나 허술한지 모르겠습니다.
통관검역만 엄격하면 멀리서 오는 농산물은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여기에다 90년에 한미무역 실무자회담에서 수입농산물의 안전치를 미국 전문가와 협의해서 결정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한국인의 생명까지 미국 전문가의 판단에 맡긴 셈입니다. 그 후 통상협상 과정에서 미국 농산물에 대한 통관 검역필증까지 면제하기로 합의한 것은 사실상 우리 국민의 안전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92년 7월에는 미국의 압력으로 가공식품의 제조 년월일을 삭제하고 유통기간만 표시하기로 했으며, 93년 7월에는 잔류농약 실태를 신고하는 녹색신고제를 실시하려 했으나 미국이 매서운 눈초리를 보이니까 나약한 정부가 꼬리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95년에는 플로리다산 자몽을 통관검역에서 불합격시키자 "한국정부가 고의로 무역장벽을 만든 것이 명백하다"며 미국무역대표부가 WTO에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못난 정부가 지레 겁을 먹고 '선통관 후검역'하겠다고 발표해버렸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미국의 오만불손하고 고압적인 압력에 굴복해야만 하는 겁니까? 정말 분통이 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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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운동가 서한태 박사님이 지난 2000년 녹색평론 50호를 기념한 특별대담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요. 라면, 짜장면, 과자, 빵, 피자, 튀김, 국수 등 애나 어른이나 모두 즐겨 먹는 제 2의 주식이랄 수 있는 밀이 이래서야 이거 말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소비하는 밀의 99%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니까 우리밀은 없는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대형 할인점에서 판매하는 밀가루 값을 비교해 보면 수입밀가루가 1kg에 1000원 조금 못 미치고 우리밀가루는 3000원 조금 넘습니다. 세 배 정도 차이가 납니다. 이 가격 차이 때문에 수요가 아주 적고요, 농가 입장에서는 어떤가? 한 번 보겠습니다.
제가 사는 강원도 지역에서는 밀 농사를 안 하는 게 당연합니다. 2모작이 되지 않아서 그래요. 밀 대신 생육기간이 매우 짧은 메밀을 심어서 대체합니다. 메밀 갈아서 막국수 같은 거 뽑아 먹습니다. 굳이 심는 분도 간혹 있는데 10월 하순에 심어서 7월 초순이나 중순이 되어야 벱니다. 그러니 밀 심으면 아무 것도 못 심습니다. 수확기가 장마철에 딱 닿아 있어서 수확도 어렵구요, 7월에 누가 콤바인 몰고 나올려고 하나요? 안 하지요. 그러니까 그냥 재미로 한 번 해 보는 것이지, 농사랄 수가 없습니다.
그래, 전화 걸어서 충청도 홍성에서 매년 밀 농사를 짓고 계시는 장길섭님께 말씀을 들었습니다. 장길섭님은 일찍이 귀농해서 농사지으시면서 풀무학교 전공부에서 농사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지금 밀 내시는 거 얼마나 해요?
키로당 1,000원씩 합니다.
소출은 얼마나 되나요?
계산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대략 900평에 500키로 정도 나온다고 보면 되겠는데, 저는 워낙 농사를 못 지으니까 그런 거고 농사 잘 짓는 다른 사람들은 그 보다 훨씬 많이 하겠죠. 저는 그 정도 보면 되겠어요.
그 동네에 밀 농사 짓는 분들 계세요?
아무도 없어요.
왜, 전에 보면 제분기도 있고 그랬잖아요?
그거 싹 치웠어요.
파종 시기는요?
여기서는 10월 20일에 뿌려서 6월 10일에서 15일 사이에 수확해요.
파종량은 어떻게 잡나요?
300평에 15키로 들어가요.
논에 밀 심으면 밀-쌀 2모작이 되나요?
되긴 되는데 너무 고달퍼요. 밀 수확 시기가 마늘, 양파, 감자 같은 밭 작물 수확기하고 딱 일치하기 때문에 그래요. 또 밀 걷어 내고 논 삶아서 모내기하고 하려면 시간이 촉박하고 그래서 기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예요. 저는 그래서 그냥 밭에 심고, 콩 심고 그래요.
메주콩 심으시는 거겠네요?
예.
올콩요?
그렇죠.
우리동네는 심으셨던 분 말씀이 7월 중순이나 돼야 수확한다고 하세요. 그래 저도 한 번 심어볼까 하다가 그만뒀어요.
7월에 수확하는 밀이 있는데, 장마 때 망가져요. 수확해도 건조기에 넣지 않으면 말릴 수도 없고, 수확 자체가 불가능해요. 장마에 다 쓰러져버리고 기계가 들어가지도 못 하고 그래서 완전히 날린 적도 있어요. 그래서 일찍 수확하는 품종을 구해다가 심고 있어요. 6월 20일쯤 장마가 시작되니까 그 전에 베서 끝내야지 안 그러면 어려워요.
수확은 어떻게 하시는데요?
학교에 콤바인이 있으니까 몰고 들어가서 베면 돼요. 밀은 아주 잘 떨어져요. 겉껍질이 벗겨져서 알곡이 쏟아지는 거니까 잘 쏟아지지 아주.
어, 그래요? 껍질이 벗겨져서 쏟아져요?
예. 쌀로 말하면 현미가 쏟아진다고 봐야지.
풀은 속 안 썩이나요?
밭둑만 잘 깎아주면 전혀 문제가 안 돼요. 김을 한 번 매주기도 하는데 실습 삼아서 하는 거지 그렇게 위협적이지는 않아요.
김을 어떻게 매시는데요?
‘농사꾼이 김매는 방법을 몰라서 묻는 게 아니다. 900평 밭 김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데 너무나 만만하게 김 한 번 매주면 된다, 이러시니까 사실 좀 당황스러워서 여쭤본다.’
귀농 1혼가? 딸깍이 가지고도 매고, 줄뿌림 했을 경우에는 풀밀어 가지고도 하고 그래요. 흩어뿌리기는 비료통 같은 거 매고 들어가서 요소비료 치듯이 뿌리고, 로타리 한 번 쳐주면 되는데, 대신 얕게 살짝 쳐야지. 줄뿌림은 밀고 다니는 파종기로 하는데 밭 상태를 봐서 해요. 밭 살이 곱고 부드러워야 되니까. 흩어뿌리기는 간단한데 줄뿌림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좀 많이 걸리죠. 흩어뿌리기 했을 때는 호미 들고 들어가서 매서 들고 나와야지. 밀은 일찍 올라오니까 풀이래봐야 냉이나 있을까 별 게 없으니까 그냥 내버려 둬도 큰 문제 없어요. 밀은 초겨울에 싹이 터서 올라오고, 이른 봄, 벌써 2월이면 새파랗게 올라오잖아요. 이게 참 예뻐요. 새파랗게 올라오는 게 예뻐서 안 심으면 허전하드라고. 관상용이라고 봐야지.
수확하시는 건 전량 학교에서 빵 만드는 데 쓰시는 건가요?
예. 제가 생산하는 걸로는 좀 부족한데 농사를 늘릴 수도 없고 해서 다른 지역에서 구해다 쓰는 형편이예요. 지역에 있는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유기농가, 생협 매장, 여성농업인센터, 풀무학교 고등부 등 이 지역에서 주문을 받아서 공급하는데 매주 두 세 번, 빵 만드는 날을 정해서 구워내죠.
옛날에 어머니한테 들어보면, 보리 같은 거 방아쪄서 먹는 일도 보통일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요, 제분공장도 없어져 버렸고, 그건 어떻게 하세요?
통밀을 씻어서 일어서 말려서 빻아서 빵을 만드는 건데요, 잘 씻고 잘 일어야 돼요. 바로 먹는 거니까. 흙이나 돌 알갱이가 조금만 들어가도 그 밀가루는 하나도 못 쓰고 다 버리는 거예요. 학교에 제분기 조그만 거, 가정에서 쓰는 게 있어요. 전동식 멧돌이라고 보시면 돼요. 스위스에 이런 게 있다고 해서 거기 다녀오시는 분한테 부탁해서 하나 구해서 쓰고 있어요.
그 제분기 값은 얼마나 해요?
글쎄,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30만 원정도 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거름은 많으면 웃자라 쓰러지고 적으면 소출이 적으니까 적절하게 맞춰야 합니다. 형님은 안 주기 미안하니까 조금 뿌려주신다고 합니다. 역시 요소비료 뿌리듯이 살짝. 거름양은 밭주인이 밭 상태 봐서, 자기 일 상황 봐서 정하면 될 듯합니다. 농사짓는 얘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 하고요, 밀 얘기는 기회 봐서 다음에 다시 한 번 나누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출처 : 오두막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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