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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농법'의 창시자 이영문 선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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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섬에는 언제부터 들어와 생활했나?
"섬에서 지낸지 6년 됐다. 이곳에서 며칠씩 머물 때도 있지만 대부분 아침에 들어와 저녁에 나간다. 지리산 하동에 집이 있다. 그곳까지 40분 거리를 거의 매일같이 출퇴근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토종'을 옛날 우리 선조들이 그렇게 불렀듯이 '돌종'이라고 부른다. 이 섬에 온 것은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사라져 가는 우리의 돌종을 보존·육성하기 위한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서다. 거기다가 우리의 토양에 맞지 않는다는 올리브, 리치, 롱간 등의 이국산 작물들을 실험 재배하고, 사프란이란 이름으로 외국서 고가에 수입해야 하는 본래 우리 꽃이었던 번홍화를 자생시키는 연구를 해 오고 있다."
- 한때 경실련에서 활동했다고 들었는데?
"경실련에 농업개혁위원회가 생겼을 때 상임위원으로 있었다. 7~8년 전 얘기다."
- 화학인산비료를 비판하다가 일본으로 피신한 적이 있다던데.
"1980년대 말쯤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토양은 화강암인데 우리나라에선 거기에 맞지 않는 화학인산비료를 생산했다. 인산비료는 일본 토양에 필요한데, 무지한 사람들이 일본 비료를 공급해 우리토양에 적용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토양들은 화학인산 과다 축척으로 죽어 있다. 내가 그 말을 했더니 당시 정부관계자들은 헛소리라고 일축했다. 비료 생산 업체들로부터는 협박전화까지 받았다. 그래서 잠시 일본으로 피신했던 것이다. 농업을 비판하려면 어떤 대안을 가지고 비판해야 한다. 나는 농업 정책을 비판할 때 아무런 대책도 대안도 없이 비판만 일삼은 정치꾼들처럼 무조건 비판 하지 않는다. 내게는 태평농법이라는 대안이 있다."
- 어떻게 해서 태평농법을 시작했나?
"영농 기계화, 농업 선진화란 기치 아래 도입된 외국산 농기계가 일으키는 잦은 고장과 문제점들을 해결하고자 농법에 관심을 쏟다가 태평농법을 시작했다. 수 천 년 간 이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선조들이 발전시켜온 전통 농사법에 맞고, 우리 토양에 맞는, 우리 농기계를 만들어야겠다는 일념에서 시작했다. 우리 토양에 맞는 농기계를 만들기 위해 직접 농사를 지어봐야 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실정에 맞는 농사법을 찾게 되었고 선조들의 전통 농사법에 담긴 지혜를 현실에 접목시킬 수도 있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태평농법인 것이다."
- 다른 친환경농법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태평농법은 친 자연농법이라는 점에서 유기농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먼저 자연에 대한 사람의 간섭이 덜하다. 친환경 자연농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대부분 자연을 착취해서 농사짓는다. 부엽토 등을 긁어다 쓰고 자연에서 많은 농자재들을 만들어 낸다. 거기다 농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태평농법은 자재가 거의 필요치 않고 노동력이 훨씬 적게 든다. 자재나 노동력이 적게 들어가기 때문에 인건비나 자재비를 절감할 수 있다."
- 태평농법에서도 풀을 제거하기 위해 침투 이행성이라는 제초제를 권하고 있지 않은가?
"권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태평농법을 시도할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도하는 것이다. 침투 이행성 제초제는 농약 잔류량이 남지 않는 안전한 것이다. 풀을 제거하기 위해 이행성 제초제를 치는 것은 농사짓는 사람의 선택일 뿐이다. 처음에 풀을 제거하는 것은 내 밭의 작물이 주인 되도록 하는 것이다. 다년생 야생초들이 주인이 아닌, 내가 원하는 작물이 주인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 태평농법은 얼핏 보기에 아주 쉬운 농법처럼 보인다. 하지만 쉬워 보이는 만큼 아주 위험한 농법이 아닌가 싶다. 어제 강연 들은 얘기를 종합해 보면 태평농법으로 밭농사를 지으려면 씨앗 선택이며 함께 심어야 할 작물이며, 시기를 잘 맞춰야 할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했지만, 그냥 우거진 풀밭에 씨만 뿌리면 되는 것이 태평농법인 것처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렇다. 태평농법을 야생초 무성한 버려진 땅에 씨만 뿌리면 다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자연 생태를 알지 못하면 태평농법을 실행하기 어렵다. 자연 생태를 이해하지 못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나는 태평농법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자연 생태부터 이해하라고 한다. 강연도 그렇게 하고 있다.
- 태평농법의 밭작물들이 밭의 주인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얼마나 걸리나?
"작물들이 그 땅의 주인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통 빠르면 2,3년이고, 늦으면 5년 정도 걸린다."
- 태평농법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전국에 몇 가구나 되나?
"태평농을 전업으로 삼는 가구는 20여 농가 쯤 되고 부업 삼아 자급자족하는 사람들은 대략 40여 가구쯤 된다. 이것은 주변에 알고 지내는 회원들을 기준으로 산출한 것이다. 내가 모르는 태평농법을 활용해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로 많을 것이다."
- 작물들을 재배하고 연구하는 연구사들이 있던데?
"그동안 혼자 하다가 고방연구원이라는 이름 아래 올해부터 연구사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연구사들은 모두 10명인데 한 달에 한 두 차례씩 섬에 찾아와 자신들이 심어 놓은 작물들을 돌보고 있다."
- 태평농법 회원들은 얼마나 되나?
"태평농법 회원들은 모두 600여명 정도 되지만 한 달에 꼬박꼬박 회비를 내는 회원은 150여명에 불과하다. 연구원이라고는 하지만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
- 돈 만원을 내고 보트를 타고 거기다 야영 장소에 음료수며 떡까지 제공받았다. 거기다 귀한 강연까지 들었다. 이런 식으로 운영하려면 여러모로 힘들 텐데, 지원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가?
"아무도 없다. 30년 동안 농사 경험을 통해 축적한 정보지만 나는 그걸 팔지 않는다. 태평농법이 한국농업 발전에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그냥 제공해 주고 있다. 태평농법이 외국산 농산물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됐으면 좋겠다. 내가 이루지 못하면 후대에서라도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태평농법을 전수 시키고 싶은데 교육시설이 없다. 지금처럼 섬에서 교육하기에는 장소가 너무 협소하다. 비나 눈이 오면 할 수 없다. 정부에서는 장기적으로 한국의 농업 발전을 위해 어떤 사람들을 지원해 줘야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영문은 누구?
1954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중퇴 두 번이 학력의 전부이다. 그러나 더 많은 것을 땅과 자연에서 배웠다. 처음 우리 땅에 맞는 농기계를 만들려는 시도에서 시작된 농사에 대한 관심은 우리의 척박한 농업환경을 개선해 보려는 의지로 나타났고 그 노력으로 태평농법이라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책 소개글에서 옮김) 저서로는 <모든 것은 흙속에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사꾼> <태평이가 전하는 태평농 이야기> 가 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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