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속에서 회사생활을 할 때에는 연말이 가장 바빴었는데, 농촌에서 농사꾼으로서는 4~6월, 특히 5월말~6월중순까지가 가장 바쁜 듯 합니다. 이 시기는 모내기를 비롯하여 고구마, 각종 콩류 등을 심을 때이고, 이달 중순에는 마늘과 감자, 완두콩, 양파 등을 수확하고 바로 판매까지도 해야 하는 시기라서 그렇습니다. 물론 시설재배를 하거나 축산, 화훼농사를 하시는 경우는 다소 다르겠지요.
올해는 예년보다는 장마가 빨리 시작된다고 하니 마음이 몹시 조급합니다. 제 주력작물인 마늘 -특히 육쪽마늘은-과 감자는 하지 무렵까지는 키운 다음에 수확을 해야 하는데, 한창 더 커야 할 시기에 일주일이나 일찍 미리 뽑아버리려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다량의 장맛비를 맞게 되면 과습으로 인한 상품성이나 저장성이 떨어지니까 부득이 이번 주말에는 모두 거둬야 할 것입니다. 내일도 새벽에 일어나서 해가 높이 올라 더워지기 전까지는 바짝 작업을 해야겠지요.
어제 해거름 무렵, 다음 주에 심을 옥수수 파종을 위한 밭갈이 작업을 하던 중, 지나가다가 제 모습을 보던 마을 어르신께서
“자네는 왜 늘상 쇠스랑으로 밭을 가나?”
“에이…뭘 이렇게 작은 땅을 가는데 트랙터를 불러요?”
“이 사람아. 그래도 사람이 할일 있고, 기계가 할 일이 있지… 맨날 그렇게 몸으로 때우면 골병들어”
이렇게 타이르시면서 혀를 쯧쯧 차며 가십니다. 아마 그 어르신도 불과 일 이십 년 전에는 소나 경운기로 밭을 가셨을 것이고, 삼사십 년 전에는 농약은커녕 화학비료도 없이 농사를 지으며, 비닐멀칭이라는 개념도 없었을 테니 5~9월에는 온 가족이 동원되어서 김매기 하느라 온종일 논밭에서 시간을 보내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비닐이나 농약 및 화학비료 없이 농부의 땀과 정성으로 농사를 짓되, 사람과 가축에게서 나온 똥오줌과 농사부산물, 음식물 찌꺼기 등으로 거름을 만들어 땅으로 되돌리고, 땅의 미생물과 곤충 등 수많은 생명은 그것을 분해하고, 작물은 자연분해 된 그것을 먹고 자라서 다시 사람에게로 돌아가는 방식이 되어서 저절로 생태적이며 언제까지나 지속 가능했던 과거의 농법이 ‘유기농’인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생태순환적’인 유기농에 흠뻑 빠져서 농사꾼이 되기로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방식의 생태적인 농사는 정말로 힘듭니다. 어쩌면 이제는 현실적이지 않은 ‘과거형 농법’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아직 경작면적이 천여 평에 불과하니까 그나마 저 혼자 붙잡고 해볼 수 있는 것이지, 그 이상의 면적이라면 이런 방식은 불가능할 것만 같습니다.
그 중 농부가 노동력을 가장 많이 할애하는 것이 ‘제초’입니다. 아마 현대농업기술의 90%는 풀(잡초)을 어떻게 통제할 것이냐에 대한 것일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기술이 비닐멀칭, 제초제, 제초제에 죽지 않는 GMO작물(옥수수, 콩, 밀, 면화 등)입니다. 풀을 잡지 못하면 어떤 작물도 수확량을 장담하지 못합니다. 풀은 작물의 양분을 빼앗을 뿐만 아니라, 작물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니까요. 귀농 원년인 2010년에는 풀에 쫓기는 농사를 한 결과, 벼를 제외하면 같은 면적당 작물의 수확량이 주변 농가의 1/3이하였습니다. 여기에 병충해피해로 전멸한 것까지 감안하면 제 모습은 농사를 지으러 온 게 아니라, 풀과 싸우느라 온 사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다들 제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한마디씩 조언을 합니다.
“약(제초제) 치지 않으면 농사 못 지어 먹어”
“비닐 덮고 파종해. 그래야 풀 안 나고, 땅이 안 말라”
“병충해 생기기 전에 약(살균살충제) 뿌려”
“트랙터 불러서 갈어”
“농협에서 파는 (화학)비료 뿌려. 어느 세월에 퇴비 만드나?”
물론 모두 저를 위한 취지로 말씀하신 것이었겠습니다만, 제가 아무리 농사초보라도 그런 묘한(?) 비법을 몰라서 안 했겠습니까? 잘 알지만, 그게 사람과 땅에 좋은 방법이 아니니까, 옛날 방식대로 농사를 지어보려는 고집이지요.
그렇게 미련한 방식으로 4년째 생태적인 농사를 고수하면서 계속 더 나은 방법을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귀농 초기부터 주로 방문하는 농사 관련 인터넷카페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실험적인 유기농사를 선도하는 선배들에게서도 많은 경험을 훔쳐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제 눈이 높아졌을까요? 아니면 상황이 바뀌었을까요? 지난해부터인가 그 선배들의 농사짓는 행태가 영 마뜩하지 않은 것입니다.
수확량을 늘리려고 각종 작물영양제나 미량원소 등을 상시로 투입하질 않나, 과수나무의 병충해를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잡겠다면서 독한 유황과 석회 등으로 조제한 약을 만들어서 뿌려대질 않나, 밭의 두둑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검은 비닐을 씌우기도 할 뿐 아니라, 땅의 회전율을 높여 수익을 높여야 한다는 명분으로 일년에 두 차례씩 트랙터로 땅을 곱게 갈아버리는 등의 반생태적인 짓을 당연하다는 듯이 자행합니다.
물론 위와 같은 짓을 하더라도 유기농 인증조건에는 어긋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유기농 인증은 USDA(미국농무부)가 자국에 적용하기 위해 정한 인증기준과 거의 흡사한데, 그자들은 ‘유기농’ 이라는 개념을 생명과 생태의 개념이 아닌, 화학합성성분만 배제하기만 하면 기꺼이 유기농이 될 수 있다는 소극적 개념으로 만든 기준인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유기농의 기준은 이렇습니다.
1. 첫째로 어떤 경우에도 땅이 싫어할만한 짓을 해서는 안되며, 부득이 작물의 생육을 위해 필요하다면, 가장 친환경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비닐을 씌워서 땅이 숨도 못 쉬게 하는 짓의 대안으로서 베어낸 풀이나 볏짚으로 두둑을 덮는다.
2. 유기농은 곧 ‘생명’을 존중하는 농사법이다. 그러므로 경작지의 지하나 지상부에 서식하는 동물의 생명권을 존중해서 그들이 살수 있는 적당한 면적의 풀의 서식을 허용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로터리 작업도 연 2회보다는 연 1회로, 기왕이면 농기계로 로터리를 치기 보다는 소나 쇠스랑으로 경운(밭갈이)작업을 하며, 할 수만 있다면 무경운 농법을 지향한다.
3. 인증받은 살균살충제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생태순환 고리가 끊어질 것이 확실하다면 억제해야 한다. 예컨대 진딧물 약을 살포하여 이것을 죽이거나 쫓아내기 보다는 진딧물의 천적인 칠성무당벌레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4. 유기농에서도 작물의 생육을 위해서 질소질 거름을 과다 투입해서 그것을 먹는 소비자의 질산태질소 중독사례가 증가하고 있는데, 작물의 수확량이나 모양새 보다는 그것을 먹을 사람의 건강을 위해서 최소한의 거름을 투입해야 사람도 땅도 건강해진다.
5. 아무리 생태적인 농사를 해왔더라도 2~3년정도 경작을 했다면 1년은 경작을 중단함으로써 땅이 쉬면서 본래의 기운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소위 ‘경작지 안식년’을 적용해야 한다.
아마 모든 유기농사를 이처럼 해야 한다면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자리잡아가는 유기농업은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지만 끝내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어차피 농사는 인류가 존속하는 한 지속되어야 할 필수산업입니다. 그렇다면 농사를 통해 생산되는 것을 먹는 인류도 먹어서 건강해지고, 그 바탕이 되는 땅도 살아 숨쉬는 토양이 되어야 서로에게 좋지 않겠습니까?
저는 아직까지는 위 다섯 가지 모두를 실천하고 있긴 합니다만, 솔직히 언제까지고 해낼 수 있을지는 장담은 못하겠군요. 왜냐하면 몸이 힘들고, 돈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매일 무섭게 자라는 풀을 어쩌지 못해서 반복적인 김매기로 진을 빼고, 기계 없이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육신을 아프게 하는지 농사를 짓지 않는 여러분들은 잘 모르실 겁니다.
그래도 제가 이런 방식의 농사를 짓는 이유는 이렇게 지은 것을 사먹는 소비자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가장 먼저 나 자신과 우리 식구들이 먹어서 보약이 된다는 믿음이 있어서입니다. 아니, 그보다는 농사를 짓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얻는 즐거움과 문득문득 활짝 열리는 깨달음이 더 큰 이유가 되지요. 그래서 저는 수확량의 많고 적음에 일희일비 하지는 않습니다. 설령 내가 키운 배추가 벌레의 습격으로 초토화 되었어도 그 벌레의 천적과 그 천적의 천적간의 순환이치를 배워서 나쁘지 않고, 지난 가을에 200평 가량의 고구마 밭에 간밤에 멧돼지 가족이 몰려와 초토화 시켜서 단 4개만 남겨놓았어도, 인간에게 쫓겨 다니느라 굶주리는 그 녀석들의 원한을 내가 다른 인간들을 대신하여 벌을 받았노라고 위안을 합니다. 그래도 좀 아깝긴 합니다. 짜식들이… 그 많은 모종을 어떻게 심은 건데. 거기 김매기 하느라 얼마나 살을 태웠는데 T_T 양심이 있다면 절반만 파먹지, 어떻게 4~500 kg을 하룻밤에 다 해치우냐. 젠장.
아래 사진은 토마토 두둑에 비닐을 씌우지 않고 우리 논에서 걷어온 볏짚을 덮고, 지주에 묶은 줄도 나일론이 아닌 볏짚으로 끈을 삼아 묶은 모습입니다.
다음 사진은 올해 고구마를 심기 위해 쇠스랑만으로 거칠게 갈아 이랑을 만들었습니다. 기계로 갈면 10분이면 끝날 일이지만, 몸으로 때우려니 매일 4시간씩 딱 1주일이 걸리더군요.
지난 주에는 마늘쫑을 뽑아서 멸치와 볶아먹었습니다. 막 수확한 유기재배 감자를 삶아 먹는 맛을 여러분들은 잘 모르실 겁니다. 그리고 밭에서 뽑아온 양파를 썰어 고추장에 찍어먹는 그 달달하고 아삭한 맛 또한 우리 가족만 아는 비밀의 맛입니다. 이런 맛을 독점적으로 즐기는 재미 역시 제가 고단한 생태농사를 짓는 주요 이유가 됩니다.
이번 주말과 다음 주말에 걸쳐서는 감자와 육쪽마늘, 양파 등을 수확할 예정입니다. 아직 수확하지도 않았음에도, 마늘의 경우 우리 밭의 상태를 잘 아시는 분들에 의해 벌써 절반이나 판매예약이 되었네요. ^^
끝으로 제 인생의 세 번째 책이 지난 주에 출간 되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재테크 담당자로서 써낸 책이고, 이번 책은 농부로서 써낸 책입니다.
혹시 귀농이나 귀촌, 혹은 어디에도 걸림 없이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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