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초

[스크랩] 토종약초로 ‘보약마을’ 일군다 (권복기/한겨레)

동곡 2005. 10. 11. 22:13
토종약초로 ‘보약마을’ 일군다
■ 산청서 약초식물원 만드는 김승주씨
 

▲ 김승주씨는 군청 공무원 시절 산청군만의 독특한 지역발전 방안을 고민하다 약초에 눈을 뜬 뒤 탁월한 효능을 지닌 지리산 토종약초를 보존·보급하기 위해 약초식물원을 만들고 있다.

김승주(55)씨는 지리산 토종 약초에 푹 빠진 사람이다. 2003년부터 경남 산청군 산청읍 내리에 약초 식물원을 만들고 있다. 그가 짓고 있는 식물원에는 희귀한 토종 약초들이 자연 상태에서 자란다. 대부분 그가 구해다 심었다.

 

식물원은 여느 산과 다름없어 보였다. 아름드리 나무도, 물 좋은 계곡도 없다. 그저 평범한 동네 뒷산 같다. 들머리에 이르자 구절초가 가을바람에 한들거리며 방문객을 맞는다. 김씨는 그 옆 바닥에 나즈막하게 깔린 작은 풀을 가리켰다.

 

“이것은 세신이라고 합니다. 기혈순환에 탁월한 효능이 있습니다.”

 

뿌리를 입에 넣어 씹자 화한 느낌이 입 안에 가득 퍼지고 조금 있으니 몸이 후끈거린다. “은단과 비할 바가 못됩니다”라는 김씨의 말이 이해가 됐다. 비탈길을 조금 올라가자 그가 키작은 나무를 가르켰다. 산마가목이라고 했다. 빨간 열매와 단풍이 아름다워 관상수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것은 토종이 아니라고 김씨는 말했다. 산마가목은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신경통과 관절염 특히 기침에 아주 잘 듣고 늙은이나 몸이 쇠약한 사람의 기력을 살리는 데 특효라고 했다.

 

“채찍으로 쓰면 죽은 말이 벌떡 일어난다고 해서 마가목이라 불립니다. 지팡이로 만들면 앉은뱅이가 일어설 정도로 기력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해요. 지팡이용 나무로 첫째가 마가목이요, 둘째가 청노장, 세째가 명아주라고 하지요. 한의학에서는 이를 정공등이라고 한다는데 저는 우리나라 토종인 산마가목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6만6천여평 식물원엔 550여종의 약초가 있다
약초 제대로 키우고 보급하려 잘 다니던 직장도 그만둬

 
6만6천여평의 식물원에 자라는 토종 약초는 모두 550여 가지. 신경통과 피로회복에 좋다는 구룡목, 부러진 뼈를 붙이는 데 탁월한 효능을 가진 접골목, 간질환에 특효라는 노각나무 등 목본류가 200여종이고 산작약, 산마늘, 삼지구엽초, 석방풍 등 초본류가 350여 종이다. 그는 지리산에서 자라는 2000여종 식물 가운데 1000여종 가까이 된다는 토종약초를 모두 모으는 게 꿈이다.

 

김씨가 토종 약초에 관심을 가진 것은 10년 전. 그는 공무원이었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뒤 초대 관광계장을 맡은 그는 마구잡이 개발 대신 산청군의 특성을 살린 독특한 지역발전 사업을 고민했다. 벤치마킹을 위해 강원도 정선, 충남 보령, 전북 무주 등 국내뿐 아니라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 외국에도 다녀왔다. 결론은 약초였다.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산청군은 약초 재배에 안성맞춤의 땅이었다. 좋은 약초를 찾는 한의사도 늘고 있어 판로 확보에도 자신이 있었다. 산청군에 들어서면 어디에서나 한약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자. 그는 산청군 전체를 한방타운화 하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약초 재배와 관광을 결합한 내용을 담은 계획서를 들고 관련 부처를 설득하기 위해 뛰어 다녔다. 주무 부서를 찾기도 어려웠다. 보건복지부와 문화관광부는 서로 소관 업무가 아니라고 했다.

 

“말은 그럴 듯한데 당신이 한의학이나 약초에 대해 뭘 아냐, 중앙정부는 물론 도청도 설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군수님도 다른 지역의 사례를 보자고 말씀하데요. 외부 전문기관에 용역을 맡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키우면 품 덜들고 약효도 좋아요 누군가 그 일을 해야겠죠”

 

그는 군수와 군의회 의원을 찾아다니며 사정사정해 용역연구비 3천만원을 따냈다. 공신력 확보를 위해 서울에 있는 이름난 회사를 찾아가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공개입찰을 않은 데 대해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을 문서로 남겼다. 나중에 이 때문에 도에서 감사할 때 문제가 됐지만 다행히 ‘선의’가 입증됐다. 사람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밤이면 약초에 대해 공부했다. 그의 방에는 약초나 동의학 관련 책들이 빼곡이 꽂혀 있다. 그렇게 만든 보고서가 1998년에 나온 민족전통의학성지조성사업 기복계획. 이를 들고 도청을 찾아가 담당 과장에게 사정사정해 결재를 받고 중앙 정부를 찾아갔다.

 

“지금도 이름을 기억합니다. 한국관광연구원 이광희 개발연구실장님이 보고서를 보더니 도와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정성이 닿았는지 그가 만든 계획은 문화관광부의 중점과제 가운데 하나로 선정됐고 지금 전통한방휴양관광단지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꿈은 이뤄졌지만 그의 눈길은 더 근본적인 데로 향했다. 군에서 대규모로 추진하는 사업과 달리 제대로 된 방법으로 토종 약초를 기르고 보급하는 일이 필요했다. 99년 말 그는 아예 사표를 던졌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이 일을 시작하는 걸 보고 정신나간 사람이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약초를 대량 재배하면 비료나 살충제를 써야 합니다. 약효도 없어요. 자연 상태에서 키우면 품도 훨씬 덜 들고 약효도 좋은 약초를 기를 수 있습니다. 환경도 보호하구요. 누군가 그런 길을 보여줘야지요.”

산청/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효능 직접경험…‘약효’ 연구 제대로 해봅시다”

 

김승주씨는 우리나라 토종 약초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믿는다. 알면 알수록 그런 확신이 커진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대상으로 실험도 자주 한다. 20년 넘게 천식으로 고생하던 그는 3년 전에 활인초라는 토종 약초를 달여 먹은 뒤 천식을 “한방에 날려 버렸다”. 몇달 동안 병원에 다녀도 하혈이 그치지 않던 장인도 그의 권유로 한련초를 달여 먹은 뒤 나았다고 했다.

 

“제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요. 그런 점에서라도 토종 약초의 효능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져야 합니다.”

 

산청의료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부인 하상순(52)씨도 처음에는 그의 일이 미덥지 않았으나 효능을 눈으로 본 뒤 지금은 그의 지지자가 됐다. 하씨는 공직을 떠나 무농약 청정농산물로 된장, 청국장, 밑반찬 등을 만들어 팔며 김씨를 돕고 있다.

 

하지만 김씨는 요즈음 고민이 많다. 토종 약초를 찾고 연구하고 보존·보급하는 식물원을 만드는 일까지 혼자 힘으로 하기에는 너무 버겁다고 느낀다. 최근에는 약초 재배 농가들로부터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을 맡아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 “개인돈을 들여가며 해야 하는 힘든 일”이지만 지역민들을 돕는 일이라 마다할 수도 없다고. 괜한 일을 벌였나, 하는 생각에 펑펑 울고 싶을 때도 있다고 했다.

 

“저와 뜻이 맞는 분들과 인연이 닿아 토종 약초에 대한 정보도 교환하고 식물원을 만드는 일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젊은이들 가운데 이 분야에 관심있는 분들이 있으면 더욱 좋구요.”

 

(055)973-7840. 권복기 기자


출처 : 오두막 마을
글쓴이 : 나무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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